우리도 "yes we can" "we did it" 을 외치고 싶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박인숙

지난주에는 오바마 후보의 압승으로 끝난 미국 대선 뉴스로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이 마치 자기 나라 대통령이 탄생한 듯이 환호와 기대감으로 들끓은 한 주였다. 그러나 전 세계를 흥분시켰던 이 초대형 뉴스에 가려서 언론의 주목도 받지 못한 안타까운 뉴스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국가차원에서 매우 유감스러운 뉴스였고, 또 하나는 같은 의사로써 참으로 슬프고 분개한 사건이었다. 앞의 뉴스는 브라질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회담에 우리나라 기획재정부장관이 국회에서의 대정부 질의 때문에 불참한 것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장관이 국회를 무시하고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출국을 반대했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초대형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익을 챙기는 것 보다 국회의원들의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기사는 치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휘두른 칼에 의사가 가슴 등을 찔려 중태에 빠졌다는 뉴스이다. 전공 특성상 중환자를 많이 보게 되기 때문에 과거 아찔했던 순간들을 목격하였던 필자로써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동료의사 한 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또다시 이런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이제는 언론에서도 관심 밖이다. 의료계 안팎의 불행은 이 뿐 만 아니다. 과거 10년 동안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는 의과대학의 전문대학원 전환 문제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일부 의대는 다시 6년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의전원을 고집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또 다른 카드를 내놓았다. 즉 의대 졸업생에게는 학사학위를 주고, 대학원 졸업생에게는 박사학위를 줌으로써 대학원제도로의 전환을 유도하려는 또 하나의 어처구니없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정책 때문에 문제 해결은 커녕 오히려 일이 더 꼬일 판이다. 이미 지난 10년 동안 소모적인 논쟁과 국민의 엄청난 세금을 낭비한 것도 모자라 이제 마지막 미끼라고 내 놓은 정책으로 말미암아 소모적인 논쟁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의사들의 재활의료기기 사용 허가에 항의하는 1인 시위가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나 아무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비과학적이고 다분히 선정적인 사이비 의료광고 가 최근 봇물 터지듯이 언론을 뒤덮고 있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이원화된 의료제도로 인해 국민의 피해와 재정적 손실이 천문학적 수준이지만 의료일원화를 이룰 가능성은 점점 더 요원해 보인다. 정부와 국민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의사들이나 의사단체 조차도 의료일원화를 아예 포기한 듯이 보인다.

지금 새삼스럽게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는 오래 묵은 문제로 보험수가를 들 수 있는데 낮은 수가 뿐 아니라 더욱 심각한 것은 과거 수 십 년 동안 보험수가를 무기로 내세운 정부로부터 기본 진료권마저 간섭과 규제를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80%에 이르는 대다수 의사들이 현재 우리나라 의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최근 조사 결과는 당연해 보인다.

오바마가 당선되니 갑자기 자기가 한국의 오바마라고 자처하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오바마가 미국의 386이라는 둥, 학번이 같다는 둥, 정말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수준이 이 정도로 코미디 수준인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욱 우려스러운 사실은 의료계의 앞날이 이런 정치인들의 손에 달렸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새 정부 들어서면서 의료계에서 큰 기대를 가지고 추진하고자 했던 그 많던 아젠다들이 하나같이 몽땅 표류중이거나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번 국정감사도 예외 없이 과거와 똑 같은 사안들로 의사들이 또다시 비난과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국정감사의 단골메뉴인 연령 금기약 처방, 병용 금기약 처방 등등 매번 똑같은 트집을 잡는 국회의원들이나, 매번 그저 또 그러려니 하면서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의료계나 똑같이 답답해 보인다. 이 사이에서 국민만 혼란에 빠져 현대의학과 의료진에 대한 불신만 깊어져 여기저기 사이비 의료를 찾아 헤매느라 돈은 돈대로 버리면서 사서 골병이 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료개혁과 함께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의료를 국가의 신성장동력으로 삼자는 목소리도 촛불에 묻혀 버렸는지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 국민에게 오바마의 승리가 가져다주는 희망과 자신감이 너무나 빛나 보이기에 지금 우리가 처한 꽉 막힌 상황이 더욱 암울하게 느껴진다. 제 18대 국회에 요란하게 입성한 의사 국회의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전공이 무엇이던지 의사로써의 일반적인 상식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이러한 무지한 주장에 대하여 왜 아무런 대응이 없는지 묻고 싶다. 지금 의료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오바마의 슬로건과 같은 "개혁과 변화"이다. "Yes we can!" "we did it" 을 외치며 환호하는 미국 국민을 부러워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정말로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하나로 통일된 목소리를 일관성 있게 내는 방법뿐이다. 나만을 위한 눈앞의 이익, 자기 대학만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작은 이익만을 위하여 대의를 버리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한다. 사심을 버리고 좀 더 긴 안목을 가지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의료정책이 무엇인지를 개발하고, 국민과 정치인들을 설득시키고 이를 끝까지 관철시켜야 한다. 지금과 같이 여러 이익집단들이 내는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인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우왕좌왕하다가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만 표류하는 신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위의 여러 문제들이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또한 전문지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투사가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하나 하자면 각 문제마다 소수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된 기구(TFT)를 만들어서 그 문제가 해결될 때 까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업무의 연속성이 유지되면서 전문성과 경험이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과 정치권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지금같이 3년 마다 의협 회장단이 바뀔 때마다 새 집행부가 들어서고 그때 마다 접근방식이 다르다면 의료계의 수많은 난제들의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과 같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면 이제껏 경험하였던 바와 같이 의료계가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끌려가고 결국에는 의료계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피해를 입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우리도 "yes we can!", "we did it!" 을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