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체험수기 공모 대상 수상글입니다.]

“신에게 선택 받은 엄마들”

벌써 며칠째 펜을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또다시 지난날의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기 조차 어서 휴지 한통을 옆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어쩌면 휴지 한통이 모자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쓰는 내내 펑펑 울께 뻔하니까요.

내 나이 사십이 다 되어 낳은 내 아들 민성아는 복잡기형인 선천성 심장병입니다. 12년이란 세월을 거의 서울 아산병원을 오가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평생을 아산병원을 오가며 살겠지만요.. 이제 14살인 내 아들 성아는 여러 번의 힘든 심장수술을 받고도 잘 견뎌준 아주 장하고 대단한 아이입니다. 박인숙 교수님, 서동만 교수님 두 분과 아산병원의 수많은 의료진들과 모든 사람이 하나 되어 이루어낸 결실입니다. 1995년 6월 21일 9시 53분 태어난 그날부터 나와 내 아들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절규와 분노와 행복과 기쁨과 그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상인의 반도 안 되는 40이란 산소수치와 심한 황달과 비정상적인 호흡으로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직행을 하였습니다.

평택 어느 병원의 의사선생님 말씀이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기 심장 상태가 이상하다며 소견서를 써줄테니 서울 아산병원의 소아심장 박인숙 교수님을 빨리 찾아가 보라고… 그때까지만해도 이렇게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을꺼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채… 서울 큰 병원에 가면 그 어떤 큰 병이라도 한방에 다 고칠 수 있을꺼라는 믿음을 안고, 온몸이 새파랗고 숨도 쉬는지 안 쉬는지 움직임조차 없는 조그마한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서울병원으로 올라가며 제발 큰 병이 아니기를 빌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병원은 왜 그 리 크고 복잡하든지요. 박인숙 교수님을 만나는 첫날 여러 가지 검사와 진찰을 끝마치고 하시는 말씀이 아기 상태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심각하여 어쩌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그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이 왜

그리도 밉던지요. 교수님 잘못도 아닌데… 아! 아! 이런게 어딨어 왜 하필 내 새끼가 이런 엄청난 병에 걸렸단 말인가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내가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이었나… 내가 죄지은게 많아서 벌을 받는건가… 기가 막히고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크고 시설도 최현대식인 병원에서… 미국까지 가서 많이 공부하고 학위까지 받고 온 유명하고 능력 있는 교수라며 못 고치는게 어딨냐고 울부짖으며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새끼 살려주세요!!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나요? 교수님도 이런 엄마 마음을 아셨던 걸까. 아니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 막중한 책임감이셨을까.. "우리 같이 최선을 대해봅시다."라는 말씀과 함께 시작된 치료와 수술 아기가 너무 작아서 당장은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조금이라도 더 키워야 성공

확률이 높다고하여 중환자실로 들어간 아기… 보호자는 어디 가지 말고 항상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계시라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섭던지… 아기를 들여보내고 기가 막힌 나는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였다.

벽에 기대 앉아 남편도 주먹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닦고 있다. 대기실을 안내받아 들어서며 나만 힘든 줄 알았더니 먼저 들어온 다른 아픈 아기엄마들도 많이 있었다. 하루에 세 번 면회시간을 기다리던 중환자실! 아픔을 함께 했던 엄마들과 면회하고 나와 아기가 더 아프고 힘든 것을 보면 그 엄마는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 못 먹고 눈물만 흘린다. 옆에 있는 엄마들이 우리가 쓰러지면 아기는 누가 돌보냐고 이럴수록 더 먹고 힘내야 한다고 밥을 물에 말아 강제로 얼레고 달래어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과 함께 떠먹이면서 붙잡고 울던 곳! 그때 어떤 엄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아기를 점지할 때 땅에 있는 엄마들을 엄격하게 심사하여 아픈 아기를 주어도 꼭 지켜줄 수 있는 엄마에게만 아픈 아기를 주신다고 하더라구… 우리는 이렇게 신에게 선택받은 대단한 엄마들이이라고" 난 나에게 최면을 건다. 그냥 있으면 미칠 것만 같으니까.. 그래 난 신에게 선택받은 엄마다. 그 어떤 힘든 일이 닥쳐와도 우리아가를 지켜줘야 하는 난 엄마다.

면회시간은 왜 그리도 늦게 오던지 중환자실 문 앞에 왔다갔다하며 문이 열릴 때마다 면회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설마 별일은 없었겠지 더 나빠진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맨 앞에 섰다가 1초라도 빨리 들어가 더 보려고 아기가 있는 곳을 향해 뛴다. 아기보다 더 크고 더 많은 기계들과 주사바늘이 꽃혀 있다. 가슴이 미어져온다. 흐르는 눈물을 쓱쓱 닦으며 두눈을 크게 뜨고 이리저리 아가를 살펴본다. 기계는 더 달지 않았나..주사는 더 꽃힌게 없나..인공호흡기는 제대로 꽂혀있나 뭔가 변한 게 있나하고..간호사들이 웃는다..직감으로 느낀다. 아! 별일없었구나..간호사들 얼굴이 굳어있다. 안좋았었구나. 설명도 듣기 전에 가슴부터 덜컹한다. 간호사들이 "조심조심 만져보셔도 되요. 아기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 다 들어요." 애절한 엄마 아빠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얼마나 안아보고 싶은가! 얼마나 만져보고 싶은가… 건강한 아기들에겐 별것도 아닌 이런 것들이 우리에겐 너무나 해보고 싶은 것들 아닌가..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의 상태에 따라 부모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여러 번의 치료와 수술과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사연들을 어떻게 단 몇 장의 글로 대신할 수 있을까..이런저런 사연을 담고 성아는 수술을 하고 살아서 병실로 옮겨졌다. 숨도 제대로 못쉬던 아기가 수술 후 힘이 생겼다. 그때부터 24시간을 바닥에만 눕히면 울어댄다. 옆에 환자들에게 미안해서 였을까… 그렇게 악을 쓰고 울던 아이가 박인숙 교수님이 회진 오셔서 교수님 손가락만 넣어주면 쪽쪽 빨면서 울음을 멈춘다.

교수님이 저를 살려주실 분이란걸 아는 걸까? 교수님의 기를 받고 싶었던걸까..교수님이 손가락을 빼고 가시면 또 악을 쓰고 울어댄다. 내 손가락을 넣어봤다..공갈젖꼭지도 넣어봤다. 아무 소용없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난 우는 아기를 안고 병원 구석구석을 헤맨다.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하염없이 울면서.. 그렇게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우리는 퇴원을 했다. 몇 번인가..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고 아이의 몸에 괴기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수술 상처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로 힘들어 할때 친정아버지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성아와 같은 무렵에 서울대병원에 골수성백혈병으로 입원해 3년 가까이 시한부 인생을 사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3년동안 딱 한번밖에 가 뵙지를 못한 이자식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원망하셨을까. 고이고이 길러놨더니 자식새끼 다 필요없다고 하셨겠지..또 얼마나 보고 싶어 가슴저리셨을까. 죄스러움과 미안함에 또 내설울에 난 가슴을 치며 흐느낀다. "아버지 미안해… 나 참 나쁜 딸이지…? 나 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그랬어… 정말 미안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쓰러져 버렸다.

친정집에 도착하니 온통 울음바다다.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봐서 눈도 못 감고 돌아가셨단다. 누군가 "미란이 아버지 미란이 왔어요" 내손을 잡아다 아버지 두눈을 쓸어내리자 눈이 스르르 감기셨다." 아버지 이런 게 어딨어. 뭐가 그리 급하다고 벌써 저세상으로 갔어. 나 아직 아버지한테 효도한번 못해봤는데 맨날 속만 썩이고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아버지한테 뭐든지 다 해준다고 오래오래 살라고 했잖아..그러마하고 했자나나 나쁜딸 만들지 말고 빨리 다시 살아나!! 빨리 일어나라고!!" 아버지를 잡아 흔들며 악을 썻다. 어른들이 끌어내며 "미란아 진정해라 이미 돌아가신걸 어쩌겠니…" 아버지를 땅속에 묻던날 "아버지 나도 데리고가 나도 저세상으로 아버지 따라갈래!!" 관을 붙잡고 매달리며 울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애통해 우시는 할머니를 고향에 남겨둔채 원통한 마음으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성아에게로 돌아와야만했다. 힘든 생활의 연속… 엉망진창이된 생활들… 잠도 안자고 매일 울어대는 성아한테 매달리느라 남편마저 직장을 포기했다. 나보다 어린남편은 매일아파 힘들어하는 자식 앞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너무 힘들어 뭔가 피난처가 필요했나보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아예 안들어오는 날도 늘어났다. 새벽에 들어와서는 담배냄새에 찌든 옷을 그냥 입은채 쪼그리고 자다가 다시 나가버리곤 한다. 웃음도 사라졌다. 말수도 없어졌다. 아예 인생을 포기하고 사는것 같다. 수소문을 해보니 친구들과 어울려 놀음을하고 다닌단다. 여자도 있단다.. 착하고 정많던 사람이었는데..어떡해야하나..너무 기가막혀 눈물조차 나질 않는다. 그 여자를 만나 성아얘기를 솔직히 했다. 그 아가씨도 울면서 그런 사정이 있는지 몰랐다고 미안하다며 다시는 안만나겠다고 한다. 아무 감정도 느낌도 없다.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향하면 서 나도 피난처를 생각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서 뭐하나…성아랑 같이 세상을 버려야겠다고… 장마가 와서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다. 냇가에는 시뻘건 물이 불어나 온 세상을 다 쓸어갈 기세다. 성아를 안았다.

유서도 써놓았다. 어두워진 저녁 택시를 불러 타고 우리 마을서 제일 큰 냇가로 가자고 했다. 이 저녁에 이 비가 쏟아지는데 애를 데리고 거기는 왜 가시냐고 택시기사가 묻는다. 나는 말없이 어두운 창밖만 바라본다. 평펑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성아를 꼭 안고 엄청난 물살이 흐르는 뚝으로 올라섰다. 여지껏 살아온 내 인생살이가 영화처럼 스쳐지나갔다. 모든 것을 포기하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진다. 성아는 떨어지는 빗방울이 싫은지 악을 쓰고 울어댄다. 성아의 울음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성아를 꼭 끌어안았다. 너무 따뜻하다. 차가운 빗물이 뜨거운 눈물을 닦아 내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성아야 못난 엄마 만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프기만하다 가는구나..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다음 세상에 꼭 다시 이엄마의 건강한 아들로 태어나주렴..그때는 웃으면서 우리 행복하게 살자" 누군가 뒤에서 성아를 낚아챘다. 내 머리채를 쥐고 끌어올렸다. 돌아보니 택시기사다..아무래도 이상해서 쫒아왔노라고..이게 무슨 짖이냐고..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단 이승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택시에 태워 다시 집에다 데려다주고 가면서 "애기엄마 힘내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아저씨다.

또다시 병원을 오가며 힘들어하는 성아를 끌고 남들이 하는거 다 해보자고 숨이 차서 열 발짝도 제대로 못 걷는 애를 휠체어에 태우고 학원으로 학교로 놀이터로 조금이라도 이런 세상이 있다는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발버둥울치며 살았다. 119는 단골이 됐고 산소통은 거의 달고 살았다. 잠 잘때도 깊은잠 한번 못자보고 혹시 산소줄이 빠질까봐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곤 했다… 이상태로는 더 이상 견딜수 없다고 마지막 폰탄수술을 하자고 하신다. 냉정하게 말해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닌가… 망설였다. 자식의 생명이기에.. 이렇게나 마 얼마라도 더 살수있는데 수술을 하다 지금 죽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또 수술이 잘되서 지금보다 숨쉬기도 편하고 걸을수도 있는데 무서워서 용기를 못 내고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하고…그렇게 수 만번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수술을 하기로 독하게 마음을 먹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가슴은 열었는데 도저히 손을 댈 수가 없어 어쩔 수없이 그냥 닫을 수밖에 없었노라고…얼마나 안좋았으면 열었던 가슴을 수술도 못해보고 닫으신걸까…세상에 태어나 제대로 걸어보지도 못하고 한번 뛰어놀아보지도 못 한채 우리 성아 인생은 휠체어에 앉아 살다 이렇게 끝나는건가…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 가슴이 찢어진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힘들어 헉헉거리는 모습을 또 어찌 봐야 한단말인가…병원 뒤 한강변으로 나갔다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신이시여 인간이 꼭 견딜 수 있는 아픔까지만 주신다더니 거짓말이라고…나 이제는 정말 견딜 수가 없다고 목을 놓아 울었다… 또 똑같은 생활로 돌아와 병원을 오갔다. 끝없는 싸움에 모든 생활은 엉망이 된지 오래다. 일 년이 지난 2007년 8월 어느 날 9월 달로 또다시 폰탄수술이 결정되었다. 한 달 동안 남편과 나는 밤마다 성아를 들여다보며 붙잡고 혹여 성아가 깰까봐 소리도 못 내고 흐느꼈다. 이번수술이 얼마나 힘든 수술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어쩌면 이 세상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르기에…이런 기막힌 부모마음이 과연 글로 전달이 될까요? 숨이 차서 걷지도 못하고 먹는 식사량은 정해져있고 뚱뚱해지면 안되니까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음식한번 마음껏 먹여보지 못 한게 한이 돼서 좋아하는 라면도 마음껏 끌여 먹이고 통닭도 시켜주고 피자도 시켜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깨문 입술이 터져 찝질하고 비릿한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가슴에서 뭉클뭉클 뜨거운 것이 올라와 자꾸 눈물만 쏟아진다. 그때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하니 병원앞마당에 옛날에 고향에서 보았던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성아를 휠체어에 태우고 하얀 메밀꽃밭을 걸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했다. 이 꽃이 지기 전에 수술 받고 다 나은 내 새끼 안고 웃으면서 집으로 가게 해달라고… 나를 바라보는 성아의 눈이 젖어있다. 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성아는 꽃잎을 쓰다 담고 있다. 모든것을 체념한 눈빛이다. 어금니를 악물었다. "성아야!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면 않돼 성아 없으면 엄마 아빠도 못살아 알지? 엄마 성아 믿어도 되지? 우리 수술 받고 집에 가면 바다도 가보고 산에도가보자 " 나는 성아에게 다짐을 받는다. 성아 눈에 고였던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것같다.

나도 쏟아지는 눈물을 성아에게 안보이려고 "엄마 커피 뽑아올께" 하며 화장실로 뛰었다. 눈물을 닦은 옷소매가 흠뻑 젖어있다.. 나 없는 동안 저도 혼자 울었든가보다. 두 눈이 빨개져있다. 엄마 걱정할까봐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구나…속 깊은 녀석 지금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불쌍한 내 새끼… 2007년 9월 5일 수술실로 향하며 엄마 아빠를 향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씩 한번 웃어주고는 뒤도 한번 안돌아보고 들어가 버린다. 엄마 아빠가 불렀는데 왜 안돌아 봤냐고 나중에 물었더니 내가 돌아보면 엄마 아빠가 가슴 아파서 더 울까봐 못 돌아봤다구 하대요…

8시 30분에 시작된 수술… 제발 이번에는 수술이 잘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며 기도를 했습니다. 몇 천 년쯤 흐른 것 같은 시간… 피를 말리는 시간… ‘오후 5시 30분 수술이 종료되어 서관 중환자실로가니 대기실에서 기다리십시오’라는 문자가 떴다. 살았구나..하는 기쁨이야말로 그 무엇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두 시간쯤 지나 정리가 끝나고 "들어오세요" 한다. 성아를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너무나 참혹한 광경에… 입에는 인공호흡기가 꽂혀져있다. 코에는 콧줄이 꽂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가슴은 열어젖힌 채 벌려져 갈비뼈에 쇠고리를 걸어 양쪽으로 벌려 놓았다. 벌려진 가슴위에 특수비닐이 덮어져 있다. 덮어진 비닐 속으로 시뻘건 내 새끼의 심장이 뛰고 있다. 배에는 구멍을 뚫어 손가락보다 굵은 호스두개가 꽂혀있다. 그 호스를 따라 시뻘건 피가 흘러나와 침대 옆에 놓인 통속으로 고이고 있다. 온몸 여기저기에는 주렁주렁 기계와 주사바늘들이 수많은 약들을 매 단채 꽃혀 있다. 도저히 살아있는 인간의 형체라고는 볼 수 없는 너무나 참혹한 광경에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숨이 막혀 정신이 몽롱해졌다.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고 편하게 그냥 성아와 함께 죽었으면 좋겠다. 눈물이 앞을 가려 성아가 보이질 않는다. 옆에서 의사선생님이 뭐라 설명을 한다. 아무 소리도 안들린다. 그저 웅웅거릴뿐… 들어야 되는데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들어야 하는데… "미안해 성아야 이렇게 너무 많이 아프게해서 정말 미안해

엄마가 아프게 낳아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이렇게 가슴을 열어놔도 사람이 살 수 있는거냐고 아니 지금 살아있는거 맞냐고… 비닐이 찢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너무나 기가 막힌 광경에 금방 죽을 것만 같아서…묻고 또 묻는다. 악몽을 꾸고 있는것 같다. 정신이 반은 나간 채 수술 받기 전 성아와 왔던 메밀꽃밭으로 나왔다. 목이 메어왔다. 성아가 만졌던 꽃잎을 만지고 또 만지며 "여보 성아가 견디다 견디다 너무 힘들어 이 세상을 포기하면 우리도 같이 성아 따라가는거다? 힘들어 걷지도 못하는데 성아 혼자 보낼 수 없자나 그치? " 남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성아가 깨어나 건강해진다면 죽을 때까지 당신과 성아만을 위해서 목숨 바쳐 살겠다고..그렇게 가슴에 비닐을 덮은 채 성아는 처절한 사투를 하고 있다.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눈이 감기질 않는다. 눈꺼풀을 강제로 잡아당겨 테이프로 붙여 놨다. 자꾸 떨어지는 테이프에 안구가 쓸려 상처가 심하다. 이상태가 계속되면 실명할 수도 있단다. 몸이 너무 부어올라 금방이라도 터질것만 같다. 이렇게 자꾸 부으면 살이 터지기 전에 어쩔 수없이 여기 저기 찢어야 한단다. 밤새도록 메밀꽃밭 에 나와 앉아 울면서 애절하게 기도했다. 다행히 붓기가 가라앉아 안 찢어도 된다고 한다. 이 상황 속에도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날부터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고 고마운 것들이 많다는 걸 난 알았다. 너무나 잘 견뎌 주고 있는 우리 성아! 날짜가 지나면서 조금씩 붓기가 빠지고 있다. 성아 얼굴이 조금씩 돌아온다. 매달렸던 기계와 주사약들도 많이 줄었다. 매일 나가 울던 메밀꽃밭에도 하나둘씩 메밀이 여물어가고 있다. 악몽같은 시간이 흐르고 가슴을 더 열어둘 수가 없다고 붓기도 어느만큼 빠졌고 자칫 병균이 들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고 오래되면 가슴도 잘 안붙어 위험하다고…가슴에 붓기가 덜 가라앉은 상태에 닫는 수술이라 눌려서 심장이 바로 멎을수도 있다고 하신다. 여태까지도 힘들게 왔지만 지금또한 위험한 고비라고..

또 가슴 졸이고 애태우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래 언제까지 비닐을 덮고 살수는 없잔아. 언젠가는 닫아야 살잔아. 12년 동안 심장을 몇 번씩 열었다 닫았다 수술하셔서 살려놓으신 교수님이 이제 그렇게 자신 없이 결정하셨을리가 없다… 믿는거야. 무조건 믿는거야! 가슴을 닫았다. 무섭던 쇠고리도, 비닐도 다 떼어냈다. 가슴에는 길게 수술자국이 쇠로 봉합되어 기찻길처럼 나있다. 오늘밤이 고비다. 밤새 남편과 나는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거렸다. 성아는 또 여러 번의 기막힌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났다. 하나씩 주사약도 떼고 깊게 꽃혀있던 인공호흡기도 떼었다. 정신이 돌아오자 엄마 아빠 목소리도 알아듣는다. 너무나 고통스러워한다. "나 너무 아파 그냥 죽고 싶어. 엄마 나좀 살려줘" 애원을 하며 운다. 너무나 안쓰러워

진통제 좀 놔달라고 했다. 그나마 편하게 잠든 성아에 모습을 보고 나온다. 며칠이 지나 병실로 옮겼다.

아직은 팔다리하나 움직이지 못하지만 살아서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내손으로 밥도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약도 먹이고 흘리는 눈물도 닦아주고 눈도 시력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중환자실에 너무 오래 누워만 있어서 팔다리가 완전히 굳어버렸다. 욕창도 생겨 여기저기 진물이 흐른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주무르고 맛사지도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한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힘이없어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 앉고 휠체어를 타고 밥도 자기혼자 한 숟가락씩 먹어보고 한 발짝씩 걸음마도 시작했다. 성아를 휠체어에 꼭꼭 싸매 태우고 메밀꽃밭으로 나왔다. 메밀은 벌써 까맣게 읶어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송이는 몇 개 없다. "성아야 여기 기억나지? 엄마 아빠랑한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잘 이겨 내줘서 고맙구, 장하구, 너무 이뻐…" 성아도 울고 나도 울었다.

열 발짝쯤 걸음마를 할 때쯤 우리는 조심스럽게 퇴원을 했다. 성아를 안고 집으로 오던 날은 내 생애 최고로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비로써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서동만 교수님, 박인숙 교수님, 그리고 선생님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아니 잊을 수 없는 소중한분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에 우리 성아는 아마도 이 세상에 없었겠지요. 우리 성아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서야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평생 잊지 않고 소중히 가슴에 새기며 살겠습니다.

수술하고 나와 12년 동안 굳었던 근육들을 되살리느라 재활치료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악착같이 받아 지금은 학교도 조금씩 걸어서 다닙니다. 지금 거실에서 들리는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며 깔깔거리는 성아에 웃음소리가 날 행복하게 합니다. 피를 굳지 않게 하는 와파린이라는 약을 평생 복용하며 조심스럽게 살아야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가족에 행복입니다. 이제는 휠체어도 안타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걷는 것도 제법 잘 걷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팔씨름을 하자며 도전도 해옵니다. 아빠가 엄살을 부리며 져주면 우쭐해하며 기뻐합니다. 이제는 빨리 커서 엄마 아빠 마음 아프고 걱정 끼친 모든 것 따따블로 갚겠다며 편지를 내미는 우리아들 민성아 엄마 아빠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고생하고 힘들었던 것 만큼 지금의 이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다시는 아프지 말고 건강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성아가 되길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빌어봅니다. 이글을 읽고 있는 저와 같은 상황의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기적은 있다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죽고 싶어도 포기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