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글 - 주간동아 2010년 5월 25일자(737호) 에 실린 의사윤리/의사정보공개 관련 글 올립니다

정보 공개를 통해 도덕성과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 박인숙

최근 조전혁 국회의원이 전교조 교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함으로써 시작된 파문이 일부 학부모단체가 가세함으로써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를 보면서 교육 소비자들이 당연히 알아야 할 이런 정보가 이제라도 국민들께 공개된 것은 다행이다. 한 개인의 미래는 물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는 교육이며 특히 자기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가 어떤 인물인지 학부모는 알 권리가 있다. 교사들도 자신이 가입한 단체가 옳다고  믿는다면 가입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자랑해야지 왜 굳이 이를 숨기려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 잘못된 태도이다.  필자는 이번 전교조교사명단 공개 사태를 보면서 같은 맥락으로 의료인에 관한 정보도 국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의료 소비자인 국민도 자기와 가족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고 이 권리도 존중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큰 대학병원 의사들은 “좋은 의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또한 담당 의사가 훌륭한 의사인지, 그리고 지금 받고 있는 치료는 올바른 것인지를 지인들을 통해 문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모든 환자들이 최상의 진료받기를 원하나 자신의 주치의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언론 매체에서 “명의 시리즈”라는 걸 종종 발표 하지만 이도 허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의료인에 대한 이러한 불신은 물론 환자 들이 의료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하루가 멀다 하고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 의사들과 병원의 비리와 부도덕한 일들을 보도하지만 해당 의사나 의료기관에 어떤 징계가 내려졌는지는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성폭행을 일삼은 인면수심의 의사에 대한 징계도 알려진 바 없다.  

국민들의 이런 불안을 해소하고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서 의사들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할 책임은 의사 개개인 뿐 아니라 의사협회에게도 있다. 물론 협회장 선출과정의 한계로 인하여 자정활동을 펼치는 것에 어려움이 짐작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회가 앞장서야 한다. 현재 의료계의 뜨거운 쟁점인 “리베이트 쌍벌제”도 마찬가지이다. 의협에서 이 법안을 격렬히 반대하는데 그렇다면 리베이트를 준 제약회사만 처벌하고 이를 받은 의사는 처벌하지 말라는 주장인가? 어떤 상황에서든지 리베이트를 받는다는 것이 당연히 위법인데 의사들이 리베이트 쌍벌제를 반대 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의협이 이 법안에 찬성하고 적극 수용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전문가 집단으로 거듭 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계는 분명 위기에 처해있고 위의 법안 이외에도 수많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그 중 몇 개만 나열해 보면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의료 서비스에 비하여 터무니 없이 낮은 보험수가, 고가의 신약 및 장비로 인한 의료비 급증과 이를 따르지 못하는 의료보험 재정,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 한의학과 현대의학으로 이원화된 의료제도, 사이비 의료의 범람, 전근대적인 의사면허제도, 모순투성이의 의학전문대학원제도, 무방비에 노출된 의료인 대상 폭력행위, 정부주도의 진료표준화 및 규격화와 이로 인한 진료권 침해, 등등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사사건건 의사단체가 정부와 대립하고 있으나 지금과 같이 서로 불신 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없다. 결국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약간씩 양보하면서 해결해야 하지만 이런 과정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은 의사단체의 도덕성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에는 의사들을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한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보는 정부와 국민의 왜곡된 시각이 그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하려면 여태껏 해오던 방식이 아닌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의사단체부터 도덕성으로 재무장하여 거듭나야 한다. 정부가 이를 대신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또한 지금 같이 의사들로만 구성된 의협 윤리위원회에 맡겨서도 안 된다. 결국 민관합동으로 공공성, 투명성, 독립성이 보장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여 의사들 뿐 아니라 타 직종 의료인들의 도덕성도 함께 검증하고 모니터하며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모든 주마다 독립기구인 의사면허국이 있어서 그 주의 모든 의사들에게 매 2~5년 마다 진료 허가증을 내주고 그들의 활동을 보고받고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한 인터넷 싸이트  “Texas Medical Board Newsletter”를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내용의 대부분을 징계받은 의사 이름, 면허번호, 지역, 불법 또는 비윤리적  행위의 구체적인 기술, 벌금 액수, 면허 일시 정지 기간 또는 취소, 윤리교육 또는 보수교육 명령 등 징계방법을 소상히 밝히는 데 지면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모든 심의절차가 원칙과 규정에 의거하여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징계받는 의사의 인권이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항의는 애초에 엄두도 낼 수 없다. 징계사유라는 것들도 우리 눈으로 보면 대단히 하찮다고 생각되는, 간단한 언어 폭력에서부터 마약 복용 등 다양하며 매 사안에 대한 징계기준이 얼마나 엄격하고 꼼꼼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그 주 안의 모든 의사들의 학력, 경력, 업적, 가입단체, 전공분야 등도 상세히 알 수 있어서 환자들이 원하는 의사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런 기관의 심의위원회는 의사 또는 각종 의료인들이 약 절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변호사, 정부관리, 시민단체, 기업 대표 등 다양한 직종의 위원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이 공정성, 투명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립성이 보장된, 민관합동 공공기관이 설립되기를 바란다.

지금과 같이 의사들의 감시를 의사들끼리만 한다면 아무리 잘 하려 해도 결국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화론에서 살아남는 종은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하는 종이라고 하였다. 국민의 건강권과 의사들의 진료권을 모두 보장하기 위하여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며 의사단체와 정부가 지금 결단을 내려야 한다. 희망을 말하며 비전을 제시하는 의사 단체의 강한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주간 동아 2010년 5월 25일자(No. 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