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의 전성시대다.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인 나꼼수의 내려받기 숫자가 매회 수백만이며, '조선·중앙·동아'의 발행 부수인 600여만부를 넘기도 했다는 게 나꼼수의 주장이다. 열혈 청취자들이 '조중동'보다 나꼼수를 더 신뢰한다는 통계도 있다. 총선과 대선 승리가 가깝다고 믿는 민주통합당은 나꼼수 선풍에 환호한다.

보수 진영에 나꼼수 열풍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욕설과 독설로 무장한 채 잡담과 농담을 섞어 이명박 정부와 현 체제를 밑도 끝도 없는 음모론으로 조롱하고 희롱하는 '가카 헌정(獻呈) 방송'은 근엄한 한국 보수를 당혹케 한다. 보수는 하늘을 찌르는 나꼼수의 인기가 포퓰리즘의 산물이라며 못마땅해한다. 나꼼수의 유행 자체가 우중(愚衆)과 폭민(暴民)의 시대를 예감케 한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보수 일각에서는 나꼼수 열풍이 '가짜 보수'인 이명박 정부 탓이라며 자신들을 이 정부와 차별화한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失政)이 나꼼수 현상을 촉발한 건 분명하다. 그러나 나꼼수가 사회적 현상으로 확산된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내곡동 사저 파문이 상징하듯 매사에 앞뒤가 다른 데다 꼼수와 암수(暗數)로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이 정부의 행태가 보수 기득권 세력 전체의 특징으로 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귀영화와 특권에 집착하면서 공인(公人)의 책임과 의무는 외면하는 최고위층 인사들의 작태는 시정잡배(市井雜輩)보다 못하다. 국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으로 덩치를 키운 재벌은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면서 골목 상권까지 위협하고 있다. 보수 기득권의 대표 주자들이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먼 추레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 보수의 도덕적 리더십은 땅에 떨어졌다. 탐욕적이고 지저분한 보수 권력을 풍자하는 나꼼수가 진보적 반(反)권력의 상징이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화가 난 시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 건 나꼼수의 성취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꼼수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지는 나라의 국민은 불행하다. 나꼼수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열광은 정수(正手)와 정도(正道)의 리더십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를 흔든 '안철수 돌풍'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최근 안 교수 지지도가 주춤하는 것은 그가 정치 참여 시기를 재면서 현실적 유·불리를 계산하는 '쿨'하지 못한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정정당당함에 대한 시민적 갈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꼼수와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우리 시대의 쌍생아(雙生兒)다. 그러나 나꼼수와 나가수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가수의 존재 이유인 가창력을 내세워 단번에 한국 가요계를 평정한 나가수의 힘은 특유의 정공법에서 나왔다. 공인된 프로 가수들이 노래 실력 하나로 공정하게 승부를 겨루면서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은 투명하고 담백하다. 이에 비해 음모론으로 과대 성장한 담론 권력을 즐기면서도 그 파장에 대해선 책임을 회피하는 나꼼수의 태도는 당당함과는 거리가 멀다. 흔쾌히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됐을 '여성 비키니 인증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궤변으로 이 사태를 가리려는 나꼼수의 모습은 그들이 그리도 비판하던 꼼수를 빼닮았다.

또 하나 차이는 나꼼수 참여자들의 정체가 갈수록 흐려진 데 반해 나가수 출연진의 특성은 항상 선명했다는 점이다. 나꼼수 주인공들이 지식인인지 개그맨인지 정치인인지 선동가인지 모호한 데 비해 나가수의 주체들은 프로 가객(歌客)으로 시종일관했다. 나꼼수와 달리 나가수는 자신이 서 있는 곳과 가야 할 길을 아는 사람들의 자리였던 셈이다. 나아가 요설(饒舌)로 가득 찬 나꼼수의 에너지가 파괴적인 데 비해 진정성이 빛나는 나가수의 에너지는 창조적이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비아냥의 독기(毒氣)는 남들보다 그걸 내뿜는 자기 영혼을 먼저 오염시키기 마련이다. 인격을 갉아먹는 나꼼수식 냉소(冷笑)는 사람을 살리는 나가수식 긍정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인기에 취한 나꼼수가 낄낄거리면서 자존망대(自尊妄大)의 함정으로 추락해 갈 때 세간의 주목에 감사할 줄 아는 나가수가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전진해 간 이유다.

이제 나가수는 종료되었다. 돌아올 새 나가수가 처음의 신선함과 힘을 회복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들의 도전은 행복했고 그 성취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이에 비해 폭주하는 나꼼수의 오만한 얼굴은 한국 공론장(公論場)을 왜곡한 스산한 기억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