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필자의 유년시절 고향의 야트막한 산 대부분은 리기다소나무 밭이었다. 리기다소나무는 어디서 온 나무일까….

　일제강점기를 겪고 한국전쟁을 치른 우리나라 산은 온통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땔감과 먹을 것조차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은 연료를 산림에서 구했을 뿐만 아니라, 초근목피로라도 생명줄을 잇기 위해 소나무 속껍질까지 벗겨 먹었으니 산림파괴 속도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고향의 문전옥답도 장마철이면 산에서 쏟아진 토사에 매몰되는 일이 잦아졌다. 아마도 박정희 대통령이 산림녹화에 총력을 쏟았던 시절이 이 즈음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민둥산에 묘목심기에 바빴다. 당시 사방 조림용으로 각광 받던 나무가 리기다소나무다.

　북미 원산의 리기다소나무는 대단한 속성수라고 불리며 귀한 대접 속에 온 산에 정착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이 나무를 열심히 심고 얼마나 빠르게 생장하는가를 지켜봤다. 숲에서는 한국 소나무인 적송(赤松)의 씨앗이 떨어져 리기다소나무와 생존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성장 속도는 리기다소나무와 견줄 바가 못되었다.

‘거름기가 전혀 없는 땅에서도 저렇게 잘 자라는 나무가 있다니’. 사람들은 리기다소나무의 경이로운 성장을 지켜보면서 조림지 사이에 힘없이 커 가는 한국 소나무를 솎아 냈다. 리기다소나무는 고향 뒷산의 권력을 장악했다.

　실제로 리기다소나무의 생장능력은 어떤 소나무 종류도 당해낼 수 없었다. 투박하고 거친 마디를 불쑥 키워 내는 솜씨도 일품이거니와 햇살을 욕심껏 받아들인 억센 3엽(葉)의 이파리 또한 야들야들하게 느껴지는 적송의 2엽(葉)이파리와 비교됐다. 어른들은 굵은 몸통을 키우며 숲을 가득 채워 가는 먼 나라에서 온 리기다소나무를 귀하게 대접했다. ‘미제”면 다 좋게 보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로부터 30~40년이 지났다. 리기다소나무들은 아직도 숲을 지키고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도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지금은 푸사리움이라는 곰팡이병에 걸린 추레한 모습으로 산을 지키고 있다. 성장을 거의 멈춘 동네의 리기다소나무는 목재로서의 가치가 없음이 알려지면서 수목갱신사업의 일환으로 베어지고 있다.

　왜 더 크게 자라나지 못하는 것일까.

　생장하는 습관이 달랐던 것이다. 한국 소나무의 뿌리는 서로 비켜 가면서 뻗는다. 땅속의 양분도 서로 나눈다. 가지에 달린 잎도 마찬가지다. 나뭇가지들은 빛을 골고루 나누기 위해 공간을 요리조리 나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면서 나누며 살아가는 한국 소나무에 비해 리기다소나무의 생장습관은 철저히 배타적이고 이기적이다.

　양분싸움을 위한 리기다소나무의 뿌리 뻗음 양상을 보면 다른 땅의 충분한 공간을 놓아둔 채 서로 한쪽 방향으로만 뻗는 경우가 많다. 광합성의 공간을 나눠 써야하는 가지와 이파리들도 서로에 대한 배려를 외면하고 한 방향으로만 뻗는 것이다. 빛을 나누어 쓰지 못하다보니 숲은 빈 공간으로 헐겁기 짝이 없다. 그리하여 리기다소나무는 초기에만 맹렬하게 성장을 거듭할 뿐 30~40년이 지나면서 기운을 소진한 채 제왕의 모습을 잃는다.

　반면 처음에는 더딘 성장을 하던 적송 숲은 나이가 들수록 빈틈이 없을 정도로 울창한 수세로 성장해서 수백년 세월을 견뎌 내고 결국 궁궐의 대들보가 된다. 힘이 있을 때 더욱 힘을 아끼고 나누어야 함은 모든 세상의 이치인가보다.